[25년 회고] 부딪쳐서 쟁취하기

2026. 1. 2. 01:56·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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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에 소홀히 한 이유는 인공지능의 영향이 크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글로 정리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주는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진 듯하다. 그리하여 이건 최소한의 양심이다. 내가 내 얘기를 하는데 한낱 확률 예측기 따위가 껴들 수 없지.
 
사실 매년 목표를 정하고 시작하는데, 작년의 이맘때에는 그런 다짐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이 안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봤을 때 올해에 나는 부딪쳐서 쟁취한 것들이 많다. 아니,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 실패했다. 나는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것을 못하고, 그리고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성찰할 수 있었던 해가 되었다.


 
대학원생으로서의 첫 학기를 시작했다. 3월 초에 연구실에 공지가 올라왔는데, 일본 학회 발표자 모집에 관한 내용이었다. 뚜렷한 연구 주제조차 없었던 내가 가면 그저 관광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교수님께 발표를 하겠다 말씀드리고 3월 말 초록 마감 전까지 연구 주제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감 전까지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만 했기에, 불과 한 달도 안 됐던 기간을 자정부터 2시까지 운행하는 심야셔틀버스를 타가며 학회 발표만을 목표로 달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부족했지만 결국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고, 5월 기타큐슈에서 열린 일본인간공학회에서 발표를 했다. 당시 석사 첫 학기에 발표한 사람은 드물다는 선배들의 말도 한몫을 했다.
 
방학에는 나와 동갑이지만 한 학기 먼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친구와 함께 교내 대회를 나갔었다. 타 연구실 인원을 포함하여 팀을 이루고, 각 연구분야를 융합하는 창의적 연구 주제를 도출하는 아이디어톤이었다. 연구실당 한 팀은 참가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어서 어떤 팀은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열심히 해도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나와 친구는 예상했었다. 대회 일주일 전에 회의를 통해 미리 후보 주제들을 추렸고, 대회 당일에는 완성도에 힘썼다. 발표도 친구가 멋들어지게 해 주었다. 당연히 수상을 했다. 팀원 모두가 '이건 될 거야'라고 자신감을 갖고 한 번의 불평 없이 열심히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을 학기에 열렸던 국내학술대회, 즉 나의 두 번째 학회에선 나름의 전략을 짰다. 포스터 경진대회가 있었는데, 살펴보니 지난 대회까지는 29개의 포스터만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따라서 구두 발표 외에 포스터 대회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번엔 무려 92개 팀이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포스터를 만드는 것까지 들인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순 없었다. 포스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내가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좋은 의견을 듣고, 심지어 명함도 공유하는, 의미 그대로의 네트워킹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비록 내 목적은 수상이었고, 그것을 이루었지만 그것보다 더 값진 경험이 됐다. '내일 비슷한 주제로 구두 발표도 하니까 와주세요'했는데 실제로 찾아와 준 연구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눈을 마주치고, 놀라고, 씨익 웃고. 그 순간의 반가움, 고마움, 뿌듯함이란!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근성이 좋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난 그렇지 않다. 뭔가에 불타올랐다가 쉽게 꺼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내게는 동기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 앞서 말한 부딪쳐서 쟁취한 것들 사이에는 수많은 실패들 역시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러한 실패는 내게 긍정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이는 귀중한 천성임에 분명하고, 매우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올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스로 진척이 더디다고 느꼈다. 잦은 실패를 땔감으로 써서 나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전략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본 학회에서 발표하기로 확정되었을 때, 발표 날짜와 지원했던 장학금의 면접 날짜가 겹쳤다. 서류가 붙었다는 자신감과 함께, 곧 있을 다른 장학금도 있으니 면접을 포기했다. 그러나 곧 있을 장학금은 떨어졌고, 서류가 붙었던 장학금을 다시 지원했던 것 또한 떨어졌다. 이전에도 두어 번 정도, 이후에도 여러 다른 장학금에 지원했었다.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 동기들은 모두 장학생이 되어 지원을 받기 때문에 비교되는 상황에 더욱 낙담했던 것 같다. 그저 몇 장의 지원 서류로 희비가 엇갈리는 사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원을 못 받는 것 자체보다 나의 투자 가치가 부족한가? 연구 역량이 부족한가? 하는 의심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올 한 해 가장 큰 골칫덩이였다.
 
하지만 끝내는 나를 갉아먹는 의심과 해왔던 고민을 떨쳐내기로 하였다. 연구실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동료가 세명 정도 있는데, 한 번은 그들 중 한 명이 학회 수상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을 했다. "그래 오빠는 그냥 이런 거 해야 돼. 쇼맨십! 그게 잘 맞아."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부딪쳐서 쟁취하는 것에 더 마음 쏟고 힘 쏟고 살아야지. 그 외에 것들은 마음 쓰지 말자. 그냥 더 부딪치고 쟁취하자.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26년은 기대되는 일이 많다. 다시 초반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에 대해 잘 몰라서 헤매고 있는 이 모습과 하나씩 찾아가는 삶이 재밌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나? 또 내일의 하루는 따분하고 재미없을 수 있지만, 다시 내년의 이맘때가 되어서는 하루하루가 좋게 추억되기를 바란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올해의 성찰은 내년의 목표로 정했다. 26년에는 더 많이 부딪치고 쟁취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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