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친구들과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하루를 같이 보낸다. 내 기준으로 가장 친한 친구들 3명이 최근 4년 간 함께해 주었는데(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카운트 다운을 마치고 술 한잔씩 하며 서로의 일 년 목표를 얘기한다. 이번 연말도 숙소를 잡으면서, 올해는 일 년을 어떻게 살았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매년 키워드를 정했던 건 아닌데, 희한하게도 올해를 준비했던 마음가짐에는 얻자, 웃자, 알자가 있었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면, 그때의 나의 상황에서 제일 필요했던 세 가지였나 보다.
23년 복학을 하면서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였는데, 당시에는 이 전공을 들고 졸업하여 IT 회사에 취직하거나 IT계열 스타트업을 차려보고자 하였다. 그러려면 남들은 다년간 쌓아온 전공 지식과 경험을 서너 배 압축하여 습득해야만 했다. 그런 내게 주저할 여유가 있겠는가. 평소 B2C 서비스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효과적이고 만족스럽게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푹 빠져 있을 때였는데, 컴퓨터공학에는 Human Computer Interaction (HCI)이라는 세부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분야 소개가 흥미로워 그 길로 곧장 HCI 연구실에서의 학부 인턴십을 시작하였다. 그때가 23년 여름이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워낙 개발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HCI의 저명한 국제 학회인 CHI에 1 저자로 논문을 시작하는 동생(무려 나보다도 다섯 살이나 어렸다.)의 옆에 붙어 실험에 필요한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였다.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듣고 나서부터 개발하는 데까지는 일주일도 안 걸렸었던 것 같다. 원래 개발을 좋아하기도 하고, 연구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정도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연구의 방향은 달랐었다. 소프트웨어 위주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었으나, 연구실의 메인 연구 분야는 하드웨어 쪽이었으니, 남의 연구를 돕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연구를 하려면 하드웨어적인 지식이 필요했었다. 이 분야가 맞나 고민할 것도 없이 아두이노와 회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23년 연말을 지냈던 것이다. 세 키워드 중 알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연구라는 건 계속 알아야 하는구나, 그래서 계속 배워야 하는구나. 그래 24년에는 좀 더 알자.
대학에서 만난 인연 중에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는 (누구나 그렇듯) 열 명도 안될 것이다. 그중 내게는 특별한 인연이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서 탄생했다. 1학년 때부터 만나기만 하면 티격 대던 기타 잘 치는 동생이 있었는데, 싸웠다기보다는 그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에 18년 말에 떠나 휴학, 코로나(로 인한 원격 수업), 군복무를 마치고 23년에 복학하였는데 그동안에 둘 다 머리가 컸는지 싸우기는커녕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팀프로젝트도 하고, 공연도 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알고 보면 말이 정말 잘 통하는 친구였다는 것을, 스물일곱이나 먹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간의 미운 정이 한몫했을 거라 믿어 아쉽지는 않았다.
이 친구는 들어 보니 참 열심히도 살았다. 기타도 잘 치지만 (진짜 잘 친다.), 학점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대학생 신분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 좋은 공모전이나 대회를 다니면서 상을 쓸어 담는 친구. 경찰청장이며, 장관이며, 대통령이며 하는 실제로 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상을 받고 성장하면서 23년 말에는 대한민국 인재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게 피곤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멋졌다. 나도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고 나한테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이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해보자, 가시적인 성과. 그것이 상이든 연구 실적이든 뭐든 간에 내년에는 많이 얻자.
나는 성격이 참 뭣 같다. 이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선천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바꾸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성격을 몇 년 내내 받아주는 아주 착한 친구들이 있어서 더 으스대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지식이기도 하고 이기는 대화법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책을 통해 많이 습득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지식 내에서 논리적이 판단이 내려졌을 때, 쉬이 고치려 들지 않는다. 정말 내가 맞아도 언쟁이 생긴 적도 있고, 내가 틀렸지만 아집으로 우겼던 적도 있고. 그러다 보면 제 화에 못 이겨서 울먹거리거나 욕을 퍼부울 때도 있었다.
그런 뾰족한 면들이 세월을 맞으며 깎여 간다. 풍화작용이라고 하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장단점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의 단점에 대한 그들의 의견이 일맥이라면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인간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성격, 대화의 방식, 말투와 같은 것들도 결국엔 배움을 통해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다듬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나서는 (속으로는 아니더라도) 좀 더 관대한 태도를 갖자고 결심했다. 웃자는 말의 의도는 이것에 기인한다. 행복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여러 상황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냥 웃자는 의미로. 그래, 내년에는 실컷 웃자.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출근한 연구실에서의 상황은 내 포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논문을 읽고, 회로와 아두이노를 공부하고 개인 미팅을 준비해 가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주지 못했고, 좋은 답변을 받지 못했다. 1월 중순부터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로 방문 연구가 잡혀 있는 상황이었는데, 결국 출국 이틀 전에 연구실을 떠나게 됐다. 이미 해놓은 비행기와 숙소가 있었기에 내 방문 연구는 5주간의 미국 여행이 돼버렸다. 방문 연구라는 거, 이름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런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나는 여행만 했으니 (물론 대학교를 방문하고, 교수님을 만나 뵙고 각종 세미나와 청강 등 최소한의 활동은 증빙을 위해 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언제 미국을 와 보겠는가. 미국 북동부를 유랑하며 (메릴랜드, 버지니아, DC, 맨해튼, 필라델피아, 그리고 볼티모어를 모두 방문해 봤다.), 생판 모르는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본토의 음식을 즐기며 세상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곳을 다시 와보겠노라고, 그때는 뭐가 됐든 더 멋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오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5주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얻었다. 많은 경험들을 말이다.
대학교의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SKT에서 하는 인공지능 부트캠프에 참여했다. 내가 학부에서 AI에 관해 배운 거라고는 통계 계산뿐이며 AI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웃긴 얘기지만, 그때는 인간 중심의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AI는 존재 자체가 괜스레 불편했었다.) 졸업 시즌의 컴공과 학생들에게 부트캠프 수료는 필수 아닌 필수였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의 내 진로가 어떻게 흘러갈지, 취업을 해야 할지 진학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저 열심히 했다. 그리고 여기서 주는 상은 다 받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머신러닝도 모르던 나는 5주간의 수업을 매일같이 복습하며 체득하기에 힘썼다. 재밌었고, 정말 많이 배웠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얕은 수준의 실력이겠지만, 지금에 이르러 AI가 직면한 여러 문제 상황과 연구 동향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왔음을 감히 자부한다 (우매함의 봉우리에 와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예상했겠지만 다짐했던 대로 이곳에서 주는 상을 모두 수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AI를 알게 되고, 상을 얻게 되었다.
부트캠프 과정에서 좋은 인맥을 많이 형성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관계가 매우 생산적이고 효용이 높으며 수료한 지 어엿 3개월이 지난 현재도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또는 그런 사람들만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나를 이끈 두 명의 귀인이 있다. 고민하는 나에게 대학원 진학으로 적극적인 push를 해줬던 친구.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려면 정말 컴공을 가야 하나? 다양한 도메인에서 AI 스택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모델링이 아닌 응용에 관심이 있다면 원하는 도메인에 AI를 도입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가만있어 보자. 사실 HCI는 인간공학의 세부 갈래이다. 그리고 인간공학은 산업공학의 세부 갈래이다. HCI는 학제 간 연구 특성을 띄므로 이렇게 범주화하는 것이 이제 와서 무의미하다만, 바꿔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산업공학과에서도 가능했던 것이다! 연구실을 고르는 데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결국에 산업공학과에 있는 원하는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내 배경지식을 생각해 보면 개발 실력에 비해 AI 응용 스킬은 한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연구실은 AI를 메인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도메인은 충분히 익힐 수 있겠으나, 그에 활용할 AI 관련 기술들은 따로 습득해야만 한다. 결국에 나는 외부에서 그 스택을 쌓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경험은 도대체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대학원 진학을 같이 준비하던 친구가 비영리 단체인 가짜연구소를 소개해 주었다. SKT 활동을 수료하고 나서 9월부터 시작된 여러 스터디 중에 초급 LLM Application을 선택하였고, 러너로 활동하게 되면서 (Learner인 줄 알았는데 Runner였다.) 부트캠프에서는 다소 부족했었던 LLM 개요, 경량화, 미세 조정 등을 체계적이고 깊게 배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단체에 속하게 되면서 참여했던 행사에서 다양한 AI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여러 통찰을 얻을 수 있었으며,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짧게나마 발표를 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웃자'가 있었다. 아니, 사실 웃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글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목표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도 정말 많았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가 실패로 돌아왔다거나, 바보 같은 실수로 기회를 잃었다거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 생산적이지 못했던 여러 에피소드와 같은 일들 말이다. 그때마다 웃기 위해 나름 노력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천성과 관성을 바꾸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싶다. 실패에 불안해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여 방황하고 있을 때에 내 옆에서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회고라는 걸 처음 써본다. 회고는 언제부터 쓸 수 있을까? 좋은 직장을 얻고? 누구나 알만 한 성과를 내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저마다의 뜻이 있겠지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며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나, 어떤 목표를 가졌고, 얼마나 이뤘고, 얼마나 변화했느냐를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저 일기 같다. 내년에는 안 쓸지도 모르고, 변화가 없을지도 모르고, 전혀 생뚱맞은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지금의 순간에 팻말을 꽂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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